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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지말라고 하는 것을 네가 하고 있다.
그것을 지적하는 나에게 넌
"네가 완벽하지 않듯 나도 완벽하지 않다."라고 했다.
그럼 나는, 내가 했던 만큼은 네가 그러더라도 참아야 하는 걸까.

점심을 같이 먹다가 나무 재질의 젓가락을 설거지한 후
어떻게 말려야 할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우리집 식기 건조대는 수저를 말리는 공간이
바닥에 뚫린 물 빠지는 구멍이 너무 작아
그곳에 나무 식기를 넣어 말리면
아래쪽이 물로 인해 썩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식기구를 말릴 수 있는
바닥 구멍이 잘 뚫린 통을 하나 사고 싶었다.
하지만 너는 그건 불필요한 지출이고
그릇 말리는 곳에 그냥 눕혀서 말리면 된다고 했다.

평소 설거지를 대부분 맡아 하는 내 입장에선
수저를 눕혀 놓으면 아래 물받이에 빠져
고여있는 물에 수저가 젖기도 하고,
애초에 그것을 잘 눕혀 두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작은 통 하나를 사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너는 눕혀서 건조할 수 있다는, 즉
대체할 방법이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사지 말라고 했다.
우린 계속 논쟁을 하다가
나무 수저는 네가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하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수저통을 하나 사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 아무 쓸모 없는 파우치, 메모지, 노트 등을 사오는
너의 모습과 지금 일상의 효용을 주장하는 너의 모습이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어봤다.
네가 사오는 잡다한 것들도 쓸모 없는 것들이 아니냐, 라고.
그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내가 사고 싶은 통은
최대의 효용은 아닐지언정 어느정도는 편하지 않겠냐, 라고.

너는 내 질문에
"내가 사오는 물건과 굿즈들은 사치품이지만,
귀여운 걸 좋아하는 내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네가 사고 싶은
수저통은 건조대 옆에 수저를 놓아 말림으로써
충분히 대체가 가능한 것이다."
라고 했다.

나는 네 말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해 반박하려는데,
너는 나에게 "같은 말을 몇 번을 하게 하는 거냐"라고 했다.
아까 전 수저를 네가 식사 후 바로 설거지하는 것으로
논쟁을 끝내놓고 왜 자꾸 딴 소리를 하냐는 말이었다.

나는 계속 생각나는 너의 이중적인 모습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을 물어모고
궁금해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 했고,
거기에 너는 "멍청해서 이해를 못한다."라고 했다.

나는 너의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너는 일전에 나에게
'짜증이 난다고 짜증을 다 내지 말고,
왜 짜증이 나는지 설명을 해야
서로를 이해하고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 있다.'
라고 수차례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너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지금 왜 짜증을 내냐고.
내가 억지를 부린 것도 아니고,
물건을 그냥 막 사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고,
네가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못 사게 하는 이유가
이전에 했던 네 말과 달라서
의문이 드는 것을 물어보고 있을 뿐인데.

그것을 지적하는 나에게 넌
"네가 완벽하지 않듯 나도 완벽하지 않다."라고 했다.
내가 지적한 부분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넌
끝까지 나에게 짜증을 내며
눈치가 없다, 멍청하다, 꼴도 보기 싫다
라는 말을 퍼붓고는 방 문을 닫아버렸다.

그럼 나는, 내가 했던 만큼은 네가 그러더라도 참아야 하는 걸까.
내가 화나고 부당해도,
내가 아무리 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받았어도
내가 했던 만큼은 그냥 참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나는 멍청하니까
넌 멍청한 나를 이해시키려 노력하느라 힘드니까
내가 참아야 하는 걸까.

나는 또 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너는 내가 작아진 모습을 싫어한다.
일면 허세로 보이더라도
당당하고 대담한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네 앞에서 난 종종 작아진다.
네가 날 작아지게 한다.

나도 너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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