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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아빠는 가정 폭력자였다. 나와 동생이 보는 앞에서 엄마를 때린 적은 셀 수 없이 많았고, 나와 동생을 때린 적도 많았다. 물건을 집어 던져 못쓰게 돼 버려야 하는데, 사람이 일부러 던졌다는 게 표가 나 신문지로 감싸서 버리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가족은 아빠가 퇴근할 때 기분에 따라 활기찬 저녁을 맞이할지 숨죽이고 방에 들어가 공부하는 척이라도 할 지를 판단했다. 그 때 난 초등학생이었고, 동생은 유치원생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가정 폭력 피해자들이 집을 나왔을 때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가기로 했다. 도망가기 이틀 전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계획을 알려주었다. 하루 전엔 아파트 아래층에 가져갈 짐을 맡겼다. 당일 아침 아빠가 출근한 후 우린 아랫집 아주머니에게 짐을 미리 도착한 차량에 싣고 아빠를 피해 도망갔다. 당시 나에겐 집을 가장 오래 떠나 있게 된 경험이었다.

  그곳에는 못된 아빠를 피해 도망 온 엄마와 딸이 대부분이었다. 아들이 있는 엄마는 우리 엄마를 제외하고 한 명이 있었다. 그 아들은 나보다 한 살 형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보다 어려보였다. 나는 그 형과 하루만에 친해졌다. 같이 샤워를 하고, 한 시간 제한을 둔 컴퓨터를 함께하며, 그 기관에서 준비한 여름 물놀이에서도 재밌게 놀았다. 며칠이 지나고는 같이 누워 sg워너비의 내사람노래를 이어폰으로 같이 들으면서 잠들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그곳 사람들 모두가 에버랜드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형은 본인의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길 원했다. 그래서 난 아쉽지만 그 형을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지낸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는 나와 동생과는 얼굴도 보지 못하게 했고, 당신 혼자 아빠를 만나고 왔다. 그리고 아빠가 쓴 두 장의 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편지에는 아빠가 잘못했다.’ ‘너희들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잘못 생각한 게 많았다.’ ‘반성하고 있다.’ ‘돌아와주면 안되겠니.’ 하는 식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솔직히 아빠의 그런 모습을 실제로 보고, 이 말들을 실제로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고, 난 편지로 만족해야 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난 아빠를 용서해야만 했다. 그래야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곳에서 지낸지 2주가 되던 날,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짐을 챙기면서 알았다. 우리가 집을 나올 때 엄마가 쌀자루에 가득 담았던 건 우리가 볼 책들이었다. 엄마가 낑낑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읽을 책들이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는 짐을 정리하다가 오열했다. 엄마가 20대 시절 썼던 글들이 담겨 있는 책을 아빠가 모두 버린 것이다. 나는 생전 엄마가, 아니 사람이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사람이 진짜 슬프면 저렇게 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젊어서부터 글을 많이 썼다. 구로공단에서 반도체공장에 다니던 엄마는 노동조합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얼마전 엄마가 보여준 그때 당시 사진들을 보니 납득이 갔다. 젊었을 적 엄마는 예뻤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적극적이었다. 엄마는 집에서 도망 나올 때 그 책들을 가져오고 싶지 않았을까? 그곳에서 그 형과 하루종일 놀면서 그 생각을 못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아직 상처는 남아 있다. 아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와는 다르게 존재감을 마음껏 보이고 있다. 난 그걸 외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도 엄마와 아빠가 티격태격 할 때면 기분이 정말 안좋다.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안좋아지면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나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그 시선이 나는 너무 싫다. 가족의 시선이 싫다는 것 자체도 아이러니지만, 정말이지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싫다. 엄마는 계란 후라이를 두 개 해서 나 하나, 엄마 하나 먹는다. 아빠는 거기에 젓가락을 댄다. 엄마는 뭐하는 짓이냐라며 아빠를 구박한다. ‘먹는다고 안했잖아요.’ 엄마가 말한다. 아빠는 나를 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왜 그걸 설명해야 하는걸까.

  딸기를 사왔다. 전부 씻어서 담으니 한 그릇이 나왔다. 엄마는 알바를 끝내고 올 동생을 위해 그걸 조금 덜어놓는다. 아빠는 그릇에 담긴 딸기를 다 먹고, 동생이 먹을 딸기에 손을 댄다. 엄마는 구박한다. ‘다른 사람도 입이 있어요.’ 아빠는 뻘줌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본다. 아빠는 머쓱하다는 듯 웃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나는 이유 모를 웃음이 나와 피식하고 웃었다. 엄마는 아빠가 우습다는 듯 비웃는다. 아빠는 안방에서 야만스럽게 웃는다.

  


난 이 집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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