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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는 리슨이라는 어플을 통해 알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버스킹을 할 배짱은 없었던 나는 인터넷 어플에 내 노래를 올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곤 했었는데, 동그라미가 내가 올린 메시지에 답장을 해줬었다. 나는 동그라미의 목소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었다. 그녀의 다정한 말투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나는 동그라미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는 사이 동그라미는 방을 나가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골라 다시 메시지를 띄웠고, 답장이 왔다. 그렇게 우리는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었다.

난 어플로 만난 인연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가볍게 만난 사이였고, 가볍게 헤어지기도 하는 걸 주변에서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는 '어플로 만났다'고 하면 그리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기도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보수적인 나 또한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그라미를 만나고 난 후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어떻게 말하면 동그라미가 좋아할지 고민했다. 동그라미의 마음에 들기 위해 행동했고, 머릿속은 온통 동그라미 생각 뿐이었다. 금사빠라고,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긴 하지만, 아무에게나 그런 감정을 느끼진 않는다.

동그라미는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멋있고, 개방적인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든 "난 다 좋아."라고 말해주고, 재미 없는 이야기도 재미 있게 들어준다. 동그라미와 함께 있으면 일 분 일 초가 즐겁다. 군대에 있을 땐 시간이 느리게 가지만, 동그라미와 있을 땐 시간이 왜 그리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동그라미도 이런 나를 좋아해준다. 동그라미가 편안했으면 좋겠어서 다정하게 말하고, 동그라미가 좋아했으면 좋겠어서 내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 보이곤 한다. 동그라미는 내 솔직한 모습이 좋다고 했다.

동그라미를 처음 만난 건 912일 수요일이다. 동그라미가 수업 공결을 내고 23일을 있다가 가기로 했다. 동그라미는 주말에 김해공항 면세점에서 일한다. 수요일 저녁 810분 정도에 도착하기로 했던 동그라미는 10분 정도 일찍 대전에 도착했다. 미리 가서 기다리려고 했던 나는 동그라미와 10분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내게 전화를 걸어 온 동그라미의 첫 인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활짝 웃는 모습이 그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본 듯했다. '첫 눈에 반했다'는 뻔한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동그라미에게 주려고 동그라미가 좋아한다는 수국을 샀으나 동그라미를 보니 너무 예쁘고 단아해서 잊어버렸다. 내 의지로 꽃을 사보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수중에 돈이 많진 않았지만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동그라미와 오는 동안 계속 차가 오는 방향에 동그라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당시 나는 동그라미의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괜한 짓을 해 밉상이 될까 싶어 고민하다 내 자취방까지 와버렸다.

한 여자가 나를 처음 만난 날, 나를 만나 내 자취방에 바로 온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나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다는 건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고, 그런 나를 의식한 동그라미는 먼저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동그라미가 선물로 가져온 디퓨저 향이 방을 은은하게 장식했고, 분위기는 연분홍빛 벚꽃처럼 물들어 가고 있었다.

둘 째 날, 나는 동그라미를 데리고 대동하늘공원에 갔다. 대엽이와 왔던 곳이었는데, 커플들밖에 없어서 뻘줌하게 있다가 돌아왔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행복했다. 동그라미는 추위에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쌀쌀함을 느껴 가디건을 걸쳐야 하는 정도의 날씨에 동그라미는 반팔 티와 얇은 반바지를 입고도 전혀 추워하지 않았다. 동그라미의 친오빠가 교통사고를 내 동그라미의 적금을 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경험을 안고도 나를 믿고 내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줬다는 것에 감사했다. 어쨌든 난 실제로 본 지 이틀 된 남자였으니까.

집에 돌아와 동그라미는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일들을 겪었었는지 구구절절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다 동그라미의 목소리에 잠깐 잠이 들었다. 그만 자자는 동그라미의 말에 잠이 깨어 이야기를 끝까지 듣다 보니 내 어렸을 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내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우리는 잠이 들었다.

셋 째 날 저녁 동그라미는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동그라미를 안아주려 했으나 동그라미는 새침하게 인사를 하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안아주면 울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끝을 보고야 말았다. 너무나도 황홀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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