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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 임용 티오 절벽은 사범대를 다니는 나에게 절망으로 다가왔다. 우리 과에서도 상위권이 못되는데다가 티오까지 바닥을 치니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점어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요새 부쩍 관심이 생기는 게 공무원인데, 2년마다 선발하는 계리직 9급이 2018년 올해 시행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직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2016년도 시행 일정으로 보아 7월에 시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던 중, 에듀윌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계리직 공무원 교과서를 신청했다. ​



사진이 왜이리 작게 올라가지.. 여튼 배송비 2,500원을 내면 무료로 책을 배송해준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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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싸우고 집을 나왔다.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하는 내가 갈 만한 곳은 없었다. 친구 두어 명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휴대폰 배터리가 다되어 피시방에 갔다. 외박나온 군인 친구와 게임을 한 판 하고 나니 어느정도 충전이 되어 있었다. 피시방을 나와 동네를 다시 걷다가 도서관에 왔다. 허지웅 작가의 책이 보였다. 집어 들어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사진을 찍으려는데, 휴대폰이 추워서 꺼져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동생이 임시로 빌려주었던 노트북을 다시 가져갔다. 


  동생과 싸운 이유는 정말 사소하다. 오늘은 엄마가 쉬는 날이었는데,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해 시켜 먹던 중 엄마가 "아들 많이 먹어."하는 말에 동생이 "나는?"하는데에서 내가 한숨을 쉰 게 발단이었다. 동생은 왜 한숨을 쉬냐고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동생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자격지심이 정말 싫다.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신 만큼 본인에게도 해주길 원한다. 둘째 콤플렉스, 막내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그건 열등감이고, 질투다. 동생은 내가 학비가 많이 들어가는 고등학교를 나온 것부터,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던 것, 어렸을 적 부모님이 자주 싸운 것, 아빠가 폭력을 행사했던 것 등에 대한 상처를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책임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아빠다. 우리 가정 내 모든 불화의 원인은 아빠다. 그럼에도 그 불똥이 나에게 튄 이유는 내가 마마보이같은 행동을 계속 보였기 때문이리라.


  사실 나를 마마보이라고 해도 크게 할 말은 없다. 엄마는 내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사람이고, 아직은 내게 너무나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생은 어렸을 적 상처나 외로움을 요즘들어 표출하고 있는 거고, 난 삭히고 있는 거다. 나도 동생과 같은 이유로 불만이 많다. 엄마도 피해자고,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냐만은 만약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엄마는 동생의 그런 투정을 '귀엽게 봐주자'며 동생이 만족할 때까지 받아주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겐 그럴 아량이 없다.


  항상 싸움은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고, 각자 서로에게 불만사항을 품고 있다. 이야기하고 싶지만 꾹꾹 참고 있다가, 조금씩 상대의 신경을 건드리고 큰 싸움으로 번진다. 어렵다. 바깥에서의 피곤한 인간관계를 가족끼리는 만들지 않았으면 했는데,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아마 평생 풀지 못할 숙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먼저 숙이고 들어가기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부담이고, 그러자면 동생의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계속 봐야한다. 나는 차라리 동생과 연을 끊겠다.


  동생의 트라우마나 컴플렉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도 같은 이유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걸 서로에게 해소하려 한다면 너무나도 소모적인 일이다.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데, 매일 얼굴을 보는 가족이다보니 잘 안된다. 사실 떨어져 있으면 그만큼 부딪힐 일도 없고, 가끔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방학이나 연말, 명절처럼 붙어 있게 되는 날이 길어질수록 다툼이 생길 여지도 커진다. 동생과 내가 잘 맞는 성격도 아니고, 둘다 부모님 아래에서 어찌 보면 빌붙어 살고 있는데, 이런 민폐까지 끼치는 건 정말 싫다.


  동생과의 다툼은 항상 육탄전으로 번진다. 처음엔 비교적 가벼운 비아냥으로 시작하지만, 폭력을 먼저 행사하는 건 대부분 동생쪽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어릴 적 트라우마때문에 유독 싸울 때도 폭력에 민감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동생이 먼저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치킨 먹던 포크를 던지고, 콜라가 담긴 컵을 내 옷에 던졌다. 밖에서 걷는데 축축하고 끈적거려서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여튼, 내가 행사하는 폭력과 동생이 행사하는 폭력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나는 진짜로 화가 나지 않으면 폭력을 하지 않고 싶다. 어떤 이유든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내가 먼저 당한 것에 대해 정당방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게 안된다면 나도 똑같은 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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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라고 하죠.

유명인이 자살했을 때 따라 자살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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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북이긴 하지만 유아인과 한서희로 대표되는 페미니즘 논쟁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지금은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의 글을 캡쳐해가며 페미니즘에 관한 사이버 설전을 벌였다. 나도 요즘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긴 터라 두 사람 간의 전쟁 아닌 전쟁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느 한 쪽만을 지지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위해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한 책도 아니고, 권장도서로 추천되는 책도 아니다. 단지 페미니즘에 관심 있던 내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책 내용은 서양 남성이 본인 내면에 숨어 있는 여성성을 찾기 위해 여장을 하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실화 바탕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그 남성은 부인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었다. 내가 주로 느꼈던 공감대는 여성들의 세계에서 그녀들의 개방성이었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야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는 말도 있듯, 여성들은 동성끼리 모였을 때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한다. 때문에 배려와 공감, 모성애가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며 서로를 위한다. 남자들이 '오그라든다'는 느낌을 받거나,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을 낯부끄러워하는 말들이다. 나도 남자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익숙하진 않다. 그래서 여자들의 그런 대화가 더 부러웠다.


  또 여자로서 생활하면서 '여자이기 때문에'겪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여자들은 더 공감할 수 있다. 남자는 평생 겪지 못하는 게 대부분인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이 그것이다. 이 책에서도 주인공이 여장을 하고 나서 겪는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할 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남자로서 할 말이 없다. 아무리 무고한 남자들이 '모든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지 말라.'고 해도, 성범죄자의 절대 다수가 남성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자친구 또는 여자 지인이 밤늦게 밖에 있을 때, 그녀들을 걱정하면서 여성 범죄자를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을 더 이해하려 해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굳이 나딩스의 배려윤리를 인용하지 않아도 남성의 배려가 지금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이 여성의 삶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은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으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들을 남자들은 '남자이기 때문에' 겪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같은 남자로서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러한데 더불어 남아선호사상과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에 대한 배려나 페미니즘이 사회적인 응원을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급진 노선을 선택하기도 한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김여사', '보슬아치' 등의 여성 혐오적 단어들에 대해 '한남충', '자들자들', '느개비', '6969', '군무새' 등의 단어로 맞서는 것이다. 본인들을 '레디컬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이들은 윤리적이진 않지만 여성 혐오라는 사회적 문제와 본인들이 받는 부당한 차별을 사회적 이슈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이슈를 만들어 공감을 이끌어낸 만큼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사람 중 최근 대두되는 인물이 유아인이고, 정반대에 있는 인물은 한서희다. 나도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급진 페미니즘은 옳지 않은 방향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성공했을 지 몰라도, 그걸로 페미니즘을 성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게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라면. 유아인의 입장 또한 진정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유아인은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하고, 한서희로 대표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따옴표를 많이 쓰고, 다소 고집 있어 보이는 그의 글이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기도 하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그는 진정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서희는 본인의 이름과 페미니즘을 내건 쇼핑몰 오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가 어찌됐든 페미니즘을 통해 높아진 본인의 인지도와 추종자들을 밑천으로 사업을 한다는 게 좋은 이미지로 남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엇으로 무얼 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내 대답은 '당신들의 페미니즘은 사업 자본이었나'라고 묻고 싶다.


  유아인이 '젠더권력을 이용해 페미니스트를 매도한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말하고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 위치에 있는 것부터 남성으로서 가지는 권력이라는 것이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며 페미니즘 운동에도 남성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는 지적인데,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걸로 유아인의 페미니즘을 전부 부정하기엔 부족하다. 유아인이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대중들의 공감을 사기에 이성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현 상황에서 '진짜 페미니스트'가 누구고, '진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결정해 줄 솔로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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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 체크카드를 만들었다. 국민은행으로 입금을 해야 하는데 근처에 국민은행이 없어서 카카오뱅크 체크카드에 일단 돈을 넣고 국민 계좌로 옮기기로 했다. 농협에서 카카오뱅크 체크카드를 넣고 입금을 시도하자 수수료 700원이 떴다. 홍보책자엔 수수료 없음이라던데..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라고 생각한 순간 문자가 하나 왔다.





키득키득
카카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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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아빠는 가정 폭력자였다. 나와 동생이 보는 앞에서 엄마를 때린 적은 셀 수 없이 많았고, 나와 동생을 때린 적도 많았다. 물건을 집어 던져 못쓰게 돼 버려야 하는데, 사람이 일부러 던졌다는 게 표가 나 신문지로 감싸서 버리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가족은 아빠가 퇴근할 때 기분에 따라 활기찬 저녁을 맞이할지 숨죽이고 방에 들어가 공부하는 척이라도 할 지를 판단했다. 그 때 난 초등학생이었고, 동생은 유치원생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가정 폭력 피해자들이 집을 나왔을 때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가기로 했다. 도망가기 이틀 전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계획을 알려주었다. 하루 전엔 아파트 아래층에 가져갈 짐을 맡겼다. 당일 아침 아빠가 출근한 후 우린 아랫집 아주머니에게 짐을 미리 도착한 차량에 싣고 아빠를 피해 도망갔다. 당시 나에겐 집을 가장 오래 떠나 있게 된 경험이었다.

  그곳에는 못된 아빠를 피해 도망 온 엄마와 딸이 대부분이었다. 아들이 있는 엄마는 우리 엄마를 제외하고 한 명이 있었다. 그 아들은 나보다 한 살 형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보다 어려보였다. 나는 그 형과 하루만에 친해졌다. 같이 샤워를 하고, 한 시간 제한을 둔 컴퓨터를 함께하며, 그 기관에서 준비한 여름 물놀이에서도 재밌게 놀았다. 며칠이 지나고는 같이 누워 sg워너비의 내사람노래를 이어폰으로 같이 들으면서 잠들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그곳 사람들 모두가 에버랜드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형은 본인의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길 원했다. 그래서 난 아쉽지만 그 형을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지낸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는 나와 동생과는 얼굴도 보지 못하게 했고, 당신 혼자 아빠를 만나고 왔다. 그리고 아빠가 쓴 두 장의 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편지에는 아빠가 잘못했다.’ ‘너희들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잘못 생각한 게 많았다.’ ‘반성하고 있다.’ ‘돌아와주면 안되겠니.’ 하는 식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솔직히 아빠의 그런 모습을 실제로 보고, 이 말들을 실제로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고, 난 편지로 만족해야 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난 아빠를 용서해야만 했다. 그래야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곳에서 지낸지 2주가 되던 날,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짐을 챙기면서 알았다. 우리가 집을 나올 때 엄마가 쌀자루에 가득 담았던 건 우리가 볼 책들이었다. 엄마가 낑낑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읽을 책들이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는 짐을 정리하다가 오열했다. 엄마가 20대 시절 썼던 글들이 담겨 있는 책을 아빠가 모두 버린 것이다. 나는 생전 엄마가, 아니 사람이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사람이 진짜 슬프면 저렇게 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젊어서부터 글을 많이 썼다. 구로공단에서 반도체공장에 다니던 엄마는 노동조합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얼마전 엄마가 보여준 그때 당시 사진들을 보니 납득이 갔다. 젊었을 적 엄마는 예뻤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적극적이었다. 엄마는 집에서 도망 나올 때 그 책들을 가져오고 싶지 않았을까? 그곳에서 그 형과 하루종일 놀면서 그 생각을 못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아직 상처는 남아 있다. 아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와는 다르게 존재감을 마음껏 보이고 있다. 난 그걸 외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도 엄마와 아빠가 티격태격 할 때면 기분이 정말 안좋다.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안좋아지면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나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그 시선이 나는 너무 싫다. 가족의 시선이 싫다는 것 자체도 아이러니지만, 정말이지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싫다. 엄마는 계란 후라이를 두 개 해서 나 하나, 엄마 하나 먹는다. 아빠는 거기에 젓가락을 댄다. 엄마는 뭐하는 짓이냐라며 아빠를 구박한다. ‘먹는다고 안했잖아요.’ 엄마가 말한다. 아빠는 나를 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왜 그걸 설명해야 하는걸까.

  딸기를 사왔다. 전부 씻어서 담으니 한 그릇이 나왔다. 엄마는 알바를 끝내고 올 동생을 위해 그걸 조금 덜어놓는다. 아빠는 그릇에 담긴 딸기를 다 먹고, 동생이 먹을 딸기에 손을 댄다. 엄마는 구박한다. ‘다른 사람도 입이 있어요.’ 아빠는 뻘줌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본다. 아빠는 머쓱하다는 듯 웃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나는 이유 모를 웃음이 나와 피식하고 웃었다. 엄마는 아빠가 우습다는 듯 비웃는다. 아빠는 안방에서 야만스럽게 웃는다.

  


난 이 집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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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아빠는 꽤나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출신에, 5남매 중 첫째다. 초등학교 졸업 후 무일푼으로 상경하여 오토바이 정비소에서 일하면서 검정고시를 봤다. 그 시절엔 그런 사람이 꽤나 많았다고 하더라. 군대는 면제를 받았고, 구로공단에서 반도체공장을 다니던 엄마와 3대3 소개팅에서 만나 결혼했다. 그래서 난 아빠가 가정적인 면이 없다는 게 어느정도는 이해가 된다. 무뚝뚝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어릴 적 폭력이었다. 아빤 폭력적이었다. 이런 집도 그 당시엔 많았다고 하지만 뭐 잘 모르겠고, 난 아빠가 무서웠고, 싫었다. 
  그런 아빠를 난 어렸을 때부터 알게모르게 피해다녔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올 때 주차장에 우리 집 차가 주차되어 있는지 확인했고, 아빠가 일을 쉬는 날에 친구를 만난다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빠는 공부는 안하고 놀러만 다닌다고 그랬다. 엄마한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냐고 했다. 별다른 핑계가 없을 땐 당시 다니던 태권도장에 오래 남아 있었다. 관장님이 왜 집에 안가냐고 하면, 재밌어서 그런다고 했다. 어느샌가 그런 눈치보는 것과 적당한 둘러댐이 버릇이 되었다. 
  지금의 아빠는 그 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기숙사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아빠는 가족 구성원의 부재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듯했다. 나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군대 시절에는 면회를 와서 "그동안 미안했다."라는 말까지 하셨다. 그걸로 지금까지 아빠가 했던 일들을 한 번에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는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지금 아빠를 보면 안쓰럽다는 마음이 든다. 가족들이 그 때의 상처때문에 아빠에게 투덜대고 퉁명스럽게 굴어도 아빠는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는다. 뉘우친 건지, 아니면 아빠의 삶에서 가족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게 더 중요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아빠는 이제 우리 가족 내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아빠가 우리 가족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작은 것은 절대 아니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 가족에게 아빠는 큰 기둥이다. 엄마가 피곤해 일어나지 못하면 아빠는 아무 말 없이 혼자 아침을 차려 드시고 출근한다. 아빠가 없으면 우리 가족은 무너진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빠는 나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는데, 아빠가 없으면 난 살아갈 수 없다. 지금의 아빠가 싫지는 않다. 오히려 그때에 비하면 좋다고 말 할수 있을 정도로 아빠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의 기억때문에 지금의 아빠를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다. 예전에, 아빠가 변하기 전에 나에게 했던 말들과 행동이 지금 생활하면서 예고 없이 불쑥 생각날 때가 있다. 밥 먹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며 밥상에 있던 모든 반찬을 비벼 먹게 한 적도 있었고, 중학교 선물로 이모가 사주신 책상을 정리하던 중 왜이리 굼뜨냐며 내 머리를 발로 찬 적도 있었다. 시험기간만 되면 안방으로 불러내 '너는 판사가 되어야 한다.'라며 세뇌를 시키느라 공부를 못하게 한 적도 있었고, 친구들과 만나기로 해 나가야 하는데 이유 없이 못 나가게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기억이 일상 생활 중에 깜빡이도 없이 찾아 온다. '잊고 있었지?'라며 놀리는 듯 떠오른다. 그럼 난 지금의 아빠에게 그 화풀이를 한다. 시원하게 화를 내면 그나마 좋을텐데 찌질해서 그렇게는 못한다. 아빠에게 그냥 띠껍게 대꾸하고, 방에 들어와 미안함을 느낀다.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내적 감정이 너무 많아서 어떤게 내 진심인지 헷갈린다. 어쩌면 내 지금 성격은 이런 데서부터 나왔을지도 모른다. 아빠 탓을 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내가 이겨냈어야 하는 것이었을테니까. 



  어렵다. 언제쯤이 되어야 사는 게 익숙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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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블로그의 플랫폼이 다른 블로그보다 개방적이라고 하여 어렵게 가입했다.


초대장을 받기 위해 3일 정도 발품을 팔아 간신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이니만큼 열심히 운영하고 예쁘게 가꿔봐야겠다.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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