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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함부로 무시하지 마라.

너는 무언가에 한번이라도 미쳐본 적 있는 사람이더냐.


나는 학생 때 주변에서 오타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팬픽, 게임, 기계 조립 등 특정 분야에 요즘 말로 '영혼을 갈아 넣'는 친구들이었다. 그때 당시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랐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았고, 그냥 유별난 친구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고, 군대에 다녀와 복학생이 되어 현실에 부딪히면서 문득 그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얼마 전 운좋게 그 친구들과 다 같이 만날 기회가 생겼다.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가 넥슨에 취직한 기념으로 모이자고 한 것이다.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인문계를 갈 때 그 친구는 망설임 없이 게임 관련 전문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그 친구를 무시하는 것을 본인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보란 듯이 모임을 주선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한 명씩 물어보았다. 일본 애니를 좋아하던 친구는 일본어 통번역 학과에 입학해 일본 유학을 갔고, 일본 영화사에 들어가 국내에 수입되는 일본 영화를 선정하는 일을 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팬픽을 쓰는 친구는 얼마전 책을 냈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러브콜이 들어오는데, 매여 있는 게 싫어 거절했다고 한다. 기계 조립을 좋아하던 친구는 항공 관련 학과에 들어가 공항공사 관제사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사실 넥슨에 입사한 친구 말고는 뭔가를 이뤄낸 친구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본인들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확고하게 존재하고, 그것과 관련된 직업을 얻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줍잖게 인문계열 사범대학에 들어와 막연하게 선생님을 꿈꿨었다. 그마저도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도피하려 했었고, 그것마저 실패하자 공무원을 하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옳은 인생, 그른 인생 같은 건 없겠지만, 사실 마음이 조금 그렇다. 자신이 좋아하고 몰두하는 분야가 있다는 건 축복받을 일이지만, 그게 없다고 해서 불행한 삶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부러운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공단기 즐겨찾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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