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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싸우고 집을 나왔다.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하는 내가 갈 만한 곳은 없었다. 친구 두어 명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휴대폰 배터리가 다되어 피시방에 갔다. 외박나온 군인 친구와 게임을 한 판 하고 나니 어느정도 충전이 되어 있었다. 피시방을 나와 동네를 다시 걷다가 도서관에 왔다. 허지웅 작가의 책이 보였다. 집어 들어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사진을 찍으려는데, 휴대폰이 추워서 꺼져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동생이 임시로 빌려주었던 노트북을 다시 가져갔다. 


  동생과 싸운 이유는 정말 사소하다. 오늘은 엄마가 쉬는 날이었는데,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해 시켜 먹던 중 엄마가 "아들 많이 먹어."하는 말에 동생이 "나는?"하는데에서 내가 한숨을 쉰 게 발단이었다. 동생은 왜 한숨을 쉬냐고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동생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자격지심이 정말 싫다.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신 만큼 본인에게도 해주길 원한다. 둘째 콤플렉스, 막내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그건 열등감이고, 질투다. 동생은 내가 학비가 많이 들어가는 고등학교를 나온 것부터,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던 것, 어렸을 적 부모님이 자주 싸운 것, 아빠가 폭력을 행사했던 것 등에 대한 상처를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책임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아빠다. 우리 가정 내 모든 불화의 원인은 아빠다. 그럼에도 그 불똥이 나에게 튄 이유는 내가 마마보이같은 행동을 계속 보였기 때문이리라.


  사실 나를 마마보이라고 해도 크게 할 말은 없다. 엄마는 내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사람이고, 아직은 내게 너무나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생은 어렸을 적 상처나 외로움을 요즘들어 표출하고 있는 거고, 난 삭히고 있는 거다. 나도 동생과 같은 이유로 불만이 많다. 엄마도 피해자고,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냐만은 만약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엄마는 동생의 그런 투정을 '귀엽게 봐주자'며 동생이 만족할 때까지 받아주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겐 그럴 아량이 없다.


  항상 싸움은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고, 각자 서로에게 불만사항을 품고 있다. 이야기하고 싶지만 꾹꾹 참고 있다가, 조금씩 상대의 신경을 건드리고 큰 싸움으로 번진다. 어렵다. 바깥에서의 피곤한 인간관계를 가족끼리는 만들지 않았으면 했는데,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아마 평생 풀지 못할 숙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먼저 숙이고 들어가기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부담이고, 그러자면 동생의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계속 봐야한다. 나는 차라리 동생과 연을 끊겠다.


  동생의 트라우마나 컴플렉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도 같은 이유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걸 서로에게 해소하려 한다면 너무나도 소모적인 일이다.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데, 매일 얼굴을 보는 가족이다보니 잘 안된다. 사실 떨어져 있으면 그만큼 부딪힐 일도 없고, 가끔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방학이나 연말, 명절처럼 붙어 있게 되는 날이 길어질수록 다툼이 생길 여지도 커진다. 동생과 내가 잘 맞는 성격도 아니고, 둘다 부모님 아래에서 어찌 보면 빌붙어 살고 있는데, 이런 민폐까지 끼치는 건 정말 싫다.


  동생과의 다툼은 항상 육탄전으로 번진다. 처음엔 비교적 가벼운 비아냥으로 시작하지만, 폭력을 먼저 행사하는 건 대부분 동생쪽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어릴 적 트라우마때문에 유독 싸울 때도 폭력에 민감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동생이 먼저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치킨 먹던 포크를 던지고, 콜라가 담긴 컵을 내 옷에 던졌다. 밖에서 걷는데 축축하고 끈적거려서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여튼, 내가 행사하는 폭력과 동생이 행사하는 폭력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나는 진짜로 화가 나지 않으면 폭력을 하지 않고 싶다. 어떤 이유든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내가 먼저 당한 것에 대해 정당방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게 안된다면 나도 똑같은 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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