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뒷북이긴 하지만 유아인과 한서희로 대표되는 페미니즘 논쟁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지금은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의 글을 캡쳐해가며 페미니즘에 관한 사이버 설전을 벌였다. 나도 요즘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긴 터라 두 사람 간의 전쟁 아닌 전쟁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느 한 쪽만을 지지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위해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한 책도 아니고, 권장도서로 추천되는 책도 아니다. 단지 페미니즘에 관심 있던 내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책 내용은 서양 남성이 본인 내면에 숨어 있는 여성성을 찾기 위해 여장을 하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실화 바탕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그 남성은 부인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었다. 내가 주로 느꼈던 공감대는 여성들의 세계에서 그녀들의 개방성이었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야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는 말도 있듯, 여성들은 동성끼리 모였을 때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한다. 때문에 배려와 공감, 모성애가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며 서로를 위한다. 남자들이 '오그라든다'는 느낌을 받거나,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을 낯부끄러워하는 말들이다. 나도 남자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익숙하진 않다. 그래서 여자들의 그런 대화가 더 부러웠다.


  또 여자로서 생활하면서 '여자이기 때문에'겪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여자들은 더 공감할 수 있다. 남자는 평생 겪지 못하는 게 대부분인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이 그것이다. 이 책에서도 주인공이 여장을 하고 나서 겪는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할 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남자로서 할 말이 없다. 아무리 무고한 남자들이 '모든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지 말라.'고 해도, 성범죄자의 절대 다수가 남성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자친구 또는 여자 지인이 밤늦게 밖에 있을 때, 그녀들을 걱정하면서 여성 범죄자를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을 더 이해하려 해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굳이 나딩스의 배려윤리를 인용하지 않아도 남성의 배려가 지금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이 여성의 삶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은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으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들을 남자들은 '남자이기 때문에' 겪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같은 남자로서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러한데 더불어 남아선호사상과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에 대한 배려나 페미니즘이 사회적인 응원을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급진 노선을 선택하기도 한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김여사', '보슬아치' 등의 여성 혐오적 단어들에 대해 '한남충', '자들자들', '느개비', '6969', '군무새' 등의 단어로 맞서는 것이다. 본인들을 '레디컬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이들은 윤리적이진 않지만 여성 혐오라는 사회적 문제와 본인들이 받는 부당한 차별을 사회적 이슈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이슈를 만들어 공감을 이끌어낸 만큼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사람 중 최근 대두되는 인물이 유아인이고, 정반대에 있는 인물은 한서희다. 나도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급진 페미니즘은 옳지 않은 방향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성공했을 지 몰라도, 그걸로 페미니즘을 성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게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라면. 유아인의 입장 또한 진정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유아인은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하고, 한서희로 대표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따옴표를 많이 쓰고, 다소 고집 있어 보이는 그의 글이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기도 하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그는 진정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서희는 본인의 이름과 페미니즘을 내건 쇼핑몰 오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가 어찌됐든 페미니즘을 통해 높아진 본인의 인지도와 추종자들을 밑천으로 사업을 한다는 게 좋은 이미지로 남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엇으로 무얼 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내 대답은 '당신들의 페미니즘은 사업 자본이었나'라고 묻고 싶다.


  유아인이 '젠더권력을 이용해 페미니스트를 매도한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말하고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 위치에 있는 것부터 남성으로서 가지는 권력이라는 것이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며 페미니즘 운동에도 남성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는 지적인데,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걸로 유아인의 페미니즘을 전부 부정하기엔 부족하다. 유아인이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대중들의 공감을 사기에 이성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현 상황에서 '진짜 페미니스트'가 누구고, '진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결정해 줄 솔로몬은 없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