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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아빠는 꽤나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출신에, 5남매 중 첫째다. 초등학교 졸업 후 무일푼으로 상경하여 오토바이 정비소에서 일하면서 검정고시를 봤다. 그 시절엔 그런 사람이 꽤나 많았다고 하더라. 군대는 면제를 받았고, 구로공단에서 반도체공장을 다니던 엄마와 3대3 소개팅에서 만나 결혼했다. 그래서 난 아빠가 가정적인 면이 없다는 게 어느정도는 이해가 된다. 무뚝뚝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어릴 적 폭력이었다. 아빤 폭력적이었다. 이런 집도 그 당시엔 많았다고 하지만 뭐 잘 모르겠고, 난 아빠가 무서웠고, 싫었다. 
  그런 아빠를 난 어렸을 때부터 알게모르게 피해다녔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올 때 주차장에 우리 집 차가 주차되어 있는지 확인했고, 아빠가 일을 쉬는 날에 친구를 만난다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빠는 공부는 안하고 놀러만 다닌다고 그랬다. 엄마한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냐고 했다. 별다른 핑계가 없을 땐 당시 다니던 태권도장에 오래 남아 있었다. 관장님이 왜 집에 안가냐고 하면, 재밌어서 그런다고 했다. 어느샌가 그런 눈치보는 것과 적당한 둘러댐이 버릇이 되었다. 
  지금의 아빠는 그 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기숙사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아빠는 가족 구성원의 부재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듯했다. 나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군대 시절에는 면회를 와서 "그동안 미안했다."라는 말까지 하셨다. 그걸로 지금까지 아빠가 했던 일들을 한 번에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는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지금 아빠를 보면 안쓰럽다는 마음이 든다. 가족들이 그 때의 상처때문에 아빠에게 투덜대고 퉁명스럽게 굴어도 아빠는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는다. 뉘우친 건지, 아니면 아빠의 삶에서 가족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게 더 중요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아빠는 이제 우리 가족 내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아빠가 우리 가족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작은 것은 절대 아니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 가족에게 아빠는 큰 기둥이다. 엄마가 피곤해 일어나지 못하면 아빠는 아무 말 없이 혼자 아침을 차려 드시고 출근한다. 아빠가 없으면 우리 가족은 무너진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빠는 나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는데, 아빠가 없으면 난 살아갈 수 없다. 지금의 아빠가 싫지는 않다. 오히려 그때에 비하면 좋다고 말 할수 있을 정도로 아빠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의 기억때문에 지금의 아빠를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다. 예전에, 아빠가 변하기 전에 나에게 했던 말들과 행동이 지금 생활하면서 예고 없이 불쑥 생각날 때가 있다. 밥 먹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며 밥상에 있던 모든 반찬을 비벼 먹게 한 적도 있었고, 중학교 선물로 이모가 사주신 책상을 정리하던 중 왜이리 굼뜨냐며 내 머리를 발로 찬 적도 있었다. 시험기간만 되면 안방으로 불러내 '너는 판사가 되어야 한다.'라며 세뇌를 시키느라 공부를 못하게 한 적도 있었고, 친구들과 만나기로 해 나가야 하는데 이유 없이 못 나가게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기억이 일상 생활 중에 깜빡이도 없이 찾아 온다. '잊고 있었지?'라며 놀리는 듯 떠오른다. 그럼 난 지금의 아빠에게 그 화풀이를 한다. 시원하게 화를 내면 그나마 좋을텐데 찌질해서 그렇게는 못한다. 아빠에게 그냥 띠껍게 대꾸하고, 방에 들어와 미안함을 느낀다.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내적 감정이 너무 많아서 어떤게 내 진심인지 헷갈린다. 어쩌면 내 지금 성격은 이런 데서부터 나왔을지도 모른다. 아빠 탓을 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내가 이겨냈어야 하는 것이었을테니까. 



  어렵다. 언제쯤이 되어야 사는 게 익숙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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