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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가 눈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던가..?
길에서 살 땐 그랬겠구나.
여튼, 창문에서 저렇게
다소곳하게 바라보는 게 참 귀엽다.

나는 오늘도 독서실에 왔다.
오전에 집에서 학교 교양 과목 기말 대비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버려 밥을 먹고 나왔다.
도착하니 오후 2시 15분.
늦더라도 조금이라도 하고 가는 게 낫겠지.
핑계 대는 완벽주의자보다
조금 모자라더라도 하는 데까지 하는 사람이 되자.

오늘도 빠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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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애인 없애지 말고
없는 애인 만들지 말자.

이 단순한 말이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다.

고양이 합사를 했다.
검정 고양이가 여친의 고양이
하얀 고양이가 내 고양이다.

아직 투닥거리긴 하지만
크게 싸우진 않는 것 같아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보아
조금의 희망을 가져보려고 한다.



그리고 난 독서실에 다니고 있다.
조만간 옮겨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다니고 있는 지금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는다.


어제는 경제 파트를 위주로 공부했다.
공무원 공부는 응용 문제보다는
단순 암기형 문제가 대부분인데,
경제는 암기보다는 응용이 많아
공부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 과목을 나에게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민준호 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낸 기출문제집을 풀다 보면
종종 저런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읽고 넘어갔는데,
요즘엔 저 문구들이 큰 힘이 된다.



동네가 참 좋다.
잠깐 산책을 하다가 빌딩들을 보면서
드라마 <미생>에서 안영이가 했던
"내가 저 안에 있어야겠다."
라는 말이 생각났다.

빠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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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나의 엄마와 아빠는 정말 많이 싸우셨고,

이혼 얘기도 많이 오갔었다.

글쎄, 어린 내가 보기에 아빠가 엄마를 많이 때렸고

엄마는 전업 주부셔서 집에 있는 시간이 아빠보다 길었기에

내 마음 속은 엄마의 편을 들었을지 모르나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완전히 잘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확한 판단은 본인들만이 할 수 있겠지만..

유독 엄마는 아빠와 싸울 때마다

집을 나가겠다는 선언을 많이 하셨다.

그 당시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재연 배우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엄마가 돈 벌어서 다시 돌아올게.'

열에 아홉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연이다.

우리 엄마도 집을 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가 너무나 힘들어 보였고,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엄마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엄마가 돈 벌어서 다시 돌아올게.'

그게 내 직감이든, 아니면 매스컴의 영향이든

어린 나는 엄마가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내 곁에 엄마가 없는 게 우선이었던 모양이다.

울면서 가지 말라고 애원했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이라 잊혀질 것 같았던 기억들이

생각보다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빠가 엄마를 죽이겠다고 이불을 뒤집어 씌우고

숨이 막히게 하려던 것, 엄마가 입고 있던 옷에

라이터로 불을 지피려던 것, 벽에 세워 두고

반대쪽 벽에서 달려가 엄마를 밀치던 것, 등등

예전에 수기로 적었던 일기장에 전부 남아 있다.

지난 6월부터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 고양이에게도 부모가 있지 않았을까,

형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버리지 말고

잘 키워야겠단 생각이다.

식탐이 많고 울음소리가 커서 가끔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녀석이 있어서 외로움이 많이 해소된다.

나에게 특별히 와서 애교를 부린다거나 하는 건 없다.

하지만 아침에 밥 달라고 나를 깨우고,

집에 가면 나를 보며 애옹애옹 우는 이 녀석을 보면

왠지 모르게 의지가 된다.

그게 단순히 밥 달라고 하는 것일지라도.

내 안에 남아 있는 이 응어리들이 언제 해소될지는 모른다.

해소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해소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지도 모른다.

그냥 나만 평생 간직하고 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기억들이 문득 나를 어깨빵 하듯이

치고 지나갈 땐, 살짝 괴롭기도 하다. 

그때의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다. 왜 그랬냐고.

엄마에게도. 왜 그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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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면서 공무원 공부에 신경을 많이 못 썼다. 물론 연애를 하면서도 공부를 잘 병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유난히 잘 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여자친구를 탓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공부를 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아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한 학기 휴학을 더 하면서까지 공무원 준비를 했었던 시간들과, 들였던 노력들까지 전부 헛것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공시생 #공스타그램 이라는 해시태그로 나의 공부 과정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나의 외롭던 자취방 공시생 생활을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이 때 나는 네이버 블로그로 원고료를 받아 포스팅을 하는 일을 했었는데, 수입원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없는 만큼 말 수도 적어지고 교우 관계도 거의 끊기다시피 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어떤 일들에 대해 아쉬운 점도 없고, 누군가를 원망할 생각도 없다. 전부 나의 선택이었고, 나는 지금까지 장거리 연애를 잘 이어가고 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쉬운 감정은 있어도 억울하진 않다. 그동안 못했던 과목들에 대한 공부를 하려 책상에 앉아도, 애초에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니 내가 필기 해놓은 내용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괴로운 일이다.

올해가 공무원 수험생들에게 정말 가뭄에 단비같은 해라고 한다. 채용 인원은 크게 늘었는데 비해 공무원 응시생 전체 수는 줄어들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직렬과 상관 없이 경쟁률이 크게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 년도를 잘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는데, 아쉽게 되었다. 물론 아직 시험은 보지도 않았고,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ㅎ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공시생이라면 끝까지 힘을 내서 꼭 합격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당신이 해왔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 과정을 다시 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시간들이었고, 당신은 충분히 잘 해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빠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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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함부로 무시하지 마라.

너는 무언가에 한번이라도 미쳐본 적 있는 사람이더냐.


나는 학생 때 주변에서 오타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팬픽, 게임, 기계 조립 등 특정 분야에 요즘 말로 '영혼을 갈아 넣'는 친구들이었다. 그때 당시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랐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았고, 그냥 유별난 친구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고, 군대에 다녀와 복학생이 되어 현실에 부딪히면서 문득 그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얼마 전 운좋게 그 친구들과 다 같이 만날 기회가 생겼다.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가 넥슨에 취직한 기념으로 모이자고 한 것이다.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인문계를 갈 때 그 친구는 망설임 없이 게임 관련 전문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그 친구를 무시하는 것을 본인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보란 듯이 모임을 주선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한 명씩 물어보았다. 일본 애니를 좋아하던 친구는 일본어 통번역 학과에 입학해 일본 유학을 갔고, 일본 영화사에 들어가 국내에 수입되는 일본 영화를 선정하는 일을 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팬픽을 쓰는 친구는 얼마전 책을 냈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러브콜이 들어오는데, 매여 있는 게 싫어 거절했다고 한다. 기계 조립을 좋아하던 친구는 항공 관련 학과에 들어가 공항공사 관제사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사실 넥슨에 입사한 친구 말고는 뭔가를 이뤄낸 친구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본인들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확고하게 존재하고, 그것과 관련된 직업을 얻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줍잖게 인문계열 사범대학에 들어와 막연하게 선생님을 꿈꿨었다. 그마저도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도피하려 했었고, 그것마저 실패하자 공무원을 하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옳은 인생, 그른 인생 같은 건 없겠지만, 사실 마음이 조금 그렇다. 자신이 좋아하고 몰두하는 분야가 있다는 건 축복받을 일이지만, 그게 없다고 해서 불행한 삶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부러운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공단기 즐겨찾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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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준비를 시작하면서 사회 강사를 선택해야 하는데, 당시 공단기 1타 위종욱과 2타 민준호 사이에서 고민을 했었다. 1타는 괜히 1타가 아닐 것이고, 2타는 1타와 자리가 자주 바뀐다는데 그것도 괜히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종욱 오티를 틀었다. 본인의 학력과 경력, 신문에 소개된 기사, 사진 등으로 어필을 시작했다. 민준호 오티를 틀었다. 작년 교재의 단점이 무엇이었고 올해 어떻게 보완했다는 것으로 시작했다. 

교재를 봤다. 가격은 보지 않고 구성을 봤다. 위종욱 교재가 훨씬 두꺼웠다. 

그다음 가격을 비교해봤다. 민준호 교재가 더 쌌다.

민준호를 선택했다. 나의 선택은 옳았다. 위종욱이 어떤 강사인지는 더 듣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민준호라는 사람의 됨됨이나 강의 스타일, 교재 스타일, 성격 등 나와 정말 잘 맞았다. 비록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관계지만 같이 술 한잔 하고 싶은 동네 형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분이 하는 말씀은 "인생이란 말이야~"같은 꼰대스러운 말이라도 귀담아 들을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민준호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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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 짓을 해도 공부가 안되는 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제대로 공부를 시작한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다. 내 목표는 공무원 합격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공무원인데, 공무원과 전혀 상관 없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자극이 안되는 느낌이다. 이 감정은 고등학생때 정말 많이 느꼈다. 나는 국어교육과를 가고 싶은데, 책상에 올라와 있는 책은 영어 수학 책이니. 거기에서 오는 어떤 괴리감이랄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그 느낌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닭장과 다를 바 없는 면학실에서 고개를 처박고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언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감옥이랑 뭐가 다르지?

  새로 시작한 오전 알바 덕분에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데 성공한다. 여자친구가 있을 땐 늦게까지 통화를 하다 잠이 들곤 했다. 그래서 항상 아침잠이 많았는데, 연애를 안해서 좋은 점은 나에게도 아침이 생겼다는 것이다. 새벽을 맞이하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잠을 잘 통제하진 못해서, 아침 7-8시 사이에 일어나는 것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공시생들을 보면 대부분 6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난다. 그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 같아 깨어 있는 시간을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그것마저 잘 되지 않은 날이었다.

  일기란 것이 원래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적어내려가는 맛 아닌가. 딱히 내용도 형식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원고 쓰는 알바를 하고 있는데, 형식과 내용에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요소들을 신경쓰다 보면 내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들이 원하는 조건은 충족하는 글이 만들어지는데, 그건 글을 쓴게 아니라 생산한 것이다. 아무짝에 쓸모 없는 글자들의 모임. 주제도 없고 내용도 없이 오로지 클릭수와 문의전화만을 기다리는 공허한 울림들.

그래서 난 여기가 좋다. 여기만은 그 더러운 글들로 채우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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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다. 당시 우리가 부르는 '선생님'이라는 직책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수업을 하고 담임을 맡는 흔히 알고 있는 그 선생님이고, 다른 하나는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그분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을 탐탁치 않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철없는 생각이지만, 그때는 그랬더랬다. 아마 지금 그 학교를 다니는 내 후배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 

  어쨌든 우리는 그분들을 알게 모르게 무시해왔다. 낮에 교실에서 만나는 선생님들보다 학벌도 낮았고, 직책이나 업무 등 모든 것이 열등해보였다. 우리는 항상 땀을 뻘뻘 흘리며 기숙사 입실 출석체크를 하는 사감 선생님들을 보며 '저사람들처럼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저열한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그렇게 대학을 가고, 사람에게 등급을 메기는 짓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대학에선 학점이 낮아도 티가 나지 않았고, 그렇다 할지라도 그사람을 아무도 무시하지 않았다. 군입대 후 고졸인 사람과 귀화 외국인을 만나면서 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짓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알던 지인들 중 고졸은 없었기 때문에 이전까지 나는 고졸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었다. 그리고 군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 자체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성숙해져갔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면서 내가 원하는 직업의 사회적 위치와 직무 난이도, 봉급 등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 사감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그분들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새파랗게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당시 그 사람들의 나이가 되면 그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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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부터 다시 학교에 다닌다. 국어교육과에 다니지만 국어 선생님에의 뜻을 포기한지 이미 오래다. 삼 개월에 삼백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다니려니 정말 짜증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실속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작년 수능이 끝나고 난 사서직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해서 2학기를 마치고 3학년이 될 때 문헌정보학과로 전과를 하거나 부전공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서직 공무원도 국어과 중등 임용과 같이 하늘의 별따기였다. 

  지금은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 국어국문학과로 전과를 하거나, 교직을 포기하고 남는 학점과 시간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 영어 과목을 수강하고 싶다.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 공무원이 되지 못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직 모른다. 예전 고삼때 수능이 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고민했던 것과 비슷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고민이 쓸 데 없는 고민이지만, 그 당시엔 심각한 것이었고 당시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거지.. 항상 일기를 써야지 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머릿속 정리가 안된다.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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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6일 금요일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에 틀림 없다. 내가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표본이 될 순 없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심각하게 망각이라는 고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다.

  엄마한테 짜증내지 말자고 다짐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모든 일이 엉켜버린 지난 일주일, 오늘 내 자취방에 오겠다는 엄마의 카톡을 보고 짜증이 났다. 다행히 통화를 하던 중은 아니어서 엄마는 내가 짜증이 난 걸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짜증을 낸 것을 알고 있다. 

  왜 나는 그 카톡을 보고 화가 났을까. 아마도 내가 휴학한 것을 숨긴 사실을 들킬까봐 겁이났을 것이다. 또, 아무리 가족이라도 내 자취방에 타인이 오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흉측한 모습을 엄마한테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나에게 갑질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왜 갑질을 하고 있는가.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 포기할 수 없다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왜 엄마에게 나를 포기하라는 제스쳐를 계속 취하고 있는가. 스스로가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가. 내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엄마가 밉다. 차라리 나를 미워했으면 나도 속편히 살았을텐데, 라는 머저리같은 생각이나 하는 나를 사랑으로 감싸안아주는 엄마가 밉다. 나같은 놈에게 사랑은 분에 겨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페미니즘에 관한 영상을 틀어놓고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다 엄마의 카톡에 잠이 깬 것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자각을 주었는데, 나는 왜 그럼에도 엄마에게 짜증을 내려 하는가. 이런 내가 무슨 일을 책임감 있게 하겠으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 하는가.

나는 불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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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 공부를 시작한지 5개월이 되었다. 3월 초부터 시작해 7월이 된 지금, 2019를 대비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과목에서 강의가 시작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2018용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했다. 어차피 큰 틀은 바뀌지 않고, 제일 변화가 있는 건 기출문제집이라고 생각해 개념 강의를 회독하는 식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6월 중순, 모든 과목의 1회독이 끝났다. 국어는 한자를 포함하여 1회독을 했고, 영어는 구문을 먼저 잡고 단어를 병행하면서 문법을 수강했다. 한국사는 전한길 선생님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라갔고, 행정학은 신용한 선생님의 강좌를 수강했다. 사회는 민준호.

공단기 프리패스 6개월짜리에 친구추천을 해 7개월동안 사용 가능하다. 이제 약 80일정도 남았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고 느낀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서서히 취직을 하고, 여자친구를 사귀니 나도 사실 조급해졌다. 취업을 하고 싶다. 너무너무 하고 싶다. 휴학을 하면서 필요한 돈은 재택 알바로 마련해왔다. 네이버 블로그 하나를 희생해 포스팅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한 달에 60만원에서 80만원까지 벌었다. 나에게 큰 힘이 되는 수입원이었다. 애드포스트에서 또한 한 달이 5만원 정도 수입을 가져다 주었다. 

3일 전, 네이버 블로그가 저품질에 걸렸다. 암담했다. 사실 이 일을 이렇게 길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봤을 때 다들 한 달에서 두 달 사이에 끝난다고, 그래서 나도 60만원 정도만 벌어도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1월 말부터 시작한 이 일이 6개월 째가 되니, 내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원고를 옮겨 적고, 사진을 업로드하고, 마치 내가 쓴 글인 양 검색노출을 위해 키워드를 반복시키는 게 양심적인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 상황에서 가능한 정말 효율적인 일이었다. 

블로그를 다시 살릴 생각은 별로 없다. 아예 희망을 저버린 건 아니기에, 올렸었던 포스트들에서 저품질에 걸릴 만한 키워드를 지우고 반복되는 단어를 수정했다. 제목도 자극적이지 않게 바꾸고, 업체 링크는 사진에 걸어 눈에 띄지 않게 했다. 절망적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하루 4천 명이 조금 안되게 들어오다가, 갑자기 300명에서 400명으로 뚝 떨어지고, 내가 1~5위를 차지하고 있던 포스트들이 10페이지 아래로 떨어지는 걸 눈으로 봤다. 저품질이라는 건 없다고 네이버 측에서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있다. 분명히 있다. 그리고 해결책은 사실상 없다. 어떻게 하면 탈출이 되었더라, 는 사례는 있지만 정설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부 운인 것이다. 네이버에서 알고리즘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문제다.

그래서 나는 다시 티스토리를 시작하려 한다. 어찌 되었든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블로그였고, 더러운 포스트는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곳이니까. 얼마 전 썸녀에게 까이고 장마까지 시작되어 악재가 겹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침대에서 나오기가 싫었다.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살아가는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모니터 앞에 앉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보려고 발버둥을 친다. 

"멈추지 말고, 몸부림 치며 기어가"

내가 좋아하는 쏜애플의 '시퍼런 밤'이라는 노래 가사다. 어떻게든 몸부림치며 기어가보자.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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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적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생활에 말이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계속 달립니다.
킵 스터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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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마트에 가서 반찬거리를 샀다.
엄마가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주문해주셨다.
왜 짜증이 나는 걸까.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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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생이라는 말이 싫다.
수험생은 모두 한 번씩 하지만
공시생은 그런 느낌이 아니라 싫다.
죄인인 것같다.
학교를 휴학한 것도 부모님껜 말하지 않았다.
후회를 하진 않지만 죄송스럽긴 하다.
하지만 말을 꺼내면 무조건 계속 다니라고 하실 것을 알기에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가 공시충인 기간은 최대한 짧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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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계획이 엉망이 된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늦게까지 계획했던 데까지 끝냈다.
집에서 기타를 괜히 가져왔나보다. 치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그래도 나아지겠지.
단칸방에만 계속 있으니 말 하는 법을 잊어버릴 것같다.
일요일엔 마트에서 장을 볼 거다.
김치, 깨, 고기와 과자를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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