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맞다.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대화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이걸 맞춰가는 과정에서 너는 나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고, 나는 그걸 고치거나 맞춰 주려 노력하지 않았다. 고친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 안에 있는 방어기제, 예민함, 점점 널 당연시 여기는 나의 오만함 등 항상 등신같이 지나고 나면 후회한다. 너는 서로의 잘잘못이 있다고 했으나, 나는 내 잘못이 더 크다고 느낀다. 이 문제에 대해서 네가 몇 번이나 말했었고, 그 때마다 나는 사과하고 후회하고 반성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한계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줄줄도 알아야 한다는 영화 대사가 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또다시 내 욕심과 참회를 위해 너를 붙잡아야 할까. 아니면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너를 이제는 놓아줘야 할까. 나를 만나면서 오히려 외로워지고 사랑에 대한 결핍이 커졌다는 말을 하며 내 앞에서 우는 너를 보며 나는 너를 붙잡는 게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오래전부터 이야기했던 것들을 고치지 않고 지키지 않는 나를 보면서 넌 점점 나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겠지.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이유는 여러가지라고 했다. 사랑하지만 헤어지고 싶다고도 했다. 전부 납득이 가는 이유였지만, 그럼에도 난 정말 너를 놓치고 싶지가 않다. 나에게 주어진 약 20일의 시간 동안 난 뭘 더 할 수 있을까. 널 붙잡기 위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널 힘들지 않게 보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아 혼란스럽다. 그리고 이러다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허비할까 더 두렵다. 적어도 시간이 지나고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할텐데.
여행가자, 는 말에 "할 수 있으면 하자"라고 대답하는 널 보며 난 더 불안해진다. 정말로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성적으로는 들면서도, 현실을 부정한다. 그래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내가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을 거야.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에는 "가까이 있을 때 붙잡지 그랬어"라는 가사도 있다. 네가 아직 내 옆에 있을 때 네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릴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로그에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동그라미는 작년 9월 중순에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에 상륙했고, 나는 그 해 11월 대전의 자취방을 정리하고 동그라미와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를 시작한 것은 누군가가 이야기를 꺼내고, 수락한 게 아니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계속해서 우리는 '언젠가는 장거리 연애를 청산해야 한다'고 다짐했고, 그 종착지가 동거였을 뿐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따로 사는 것이 아닌 동거를 하는 것이 우리에겐 더 자연스러운 선택지였다.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만나는 시간의 대부분을 서로의 일상 생활과 정말 밀접한 상황에서 지냈다. 나는 부산에 연고가 없었고, 동그라미는 대전에 연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을 가질 때 서로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자연스레 동거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생활 습관부터 서로의 행동에 대해 실망하거나 다투는 경우가 꽤 있었다. 한번은 정말 크게 싸운 적이 있었는데, 이유는 다름 아니라 내가 설거지를 해놓은 것을 동그라미가 못마땅해한 것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버미큘라라는 회사에서 나온 밥솥으로 밥을 지어 먹었는데, 그 밥솥은 설거지를 하고 나서 물기를 잘 닦지 않으면 가장자리에 녹이 쉽게 슬어 주의해야 하는데, 내가 그 부분을 제대로 하지 않아 정말로 녹이 슬어버렸다.
여기까지는 그냥 단순한 헤프닝이었는데, 그 밥솥을 관리하는 게 너무 까다롭다고 느낀 내가 그 밥솥을 설거지하기가 싫다고 말했고, 동그라미는 그런 나를 보며 자신이 못하는 부분에 대해 너무 쉽게 포기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작은 말싸움이 시작되었고, 동그라미가 나에게 "집안일을 하는 걸 보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짐작이 된다."라고 말했다. 화가 폭발한 나는 그 자리에서 "X나 싸X지 없다 X발."이라고 하고 집을 나와 버렸다.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냉전이 이어지다가, 다시 대화를 한 후 우리는 화해했다. 우리가 그 집에서 가장 크게 싸웠던 날이었다.
그 집은 6개월 단기 원룸이었는데, 사람 두 명과 고양이 두 마리가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 3월 방이 넓게 빠진 1.5룸으로 이사를 왔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냐, 하면, 동그라미와 나 사이의 문제다. 언젠가부터 나는 동그라미의 말들이 모두 잔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느낀 내 감정이 동그라미를 대하는 말투와 태도에 비춰졌고, 동그라미는 내가 자신을 더 이상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천에는 연고가 없는 동그라미는 나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부분을 의지한다고 했는데, 그런 동그라미가 나의 태도를 보며 외로움도 느꼈다고 했다.
"우리 헤어져."
이번 달 초, 동그라미가 나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으며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본 동그라미가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란 놈은 후회를 반복하면서도 변하지를 않는다. 당연하게도 나는 동그라미에게 매달렸고, 10월 한달 동안의 유예 기간을 갖기로 했다.
저번주에는 동그라미가 고향인 부산에 다녀왔다. 떨어져 있으면서 동그라미는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고, 친구의 숙모님 댁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대화도 많이 하고 왔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는 외로운 감정이 많이 위로된다고 했다. 통화를 하면서 나는 넌지시 그녀의 마음에 대해 물어봤는데, 그녀는 그런 걸 잘 눈치채는 편이라 "그냥 묻지 말고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내자."라고 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요즘은 그 말대로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고 있다. 평소처럼 앞으로의 계획과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헤어지자는 말을 한 적이 없던 것처럼 지낸다. 그래서 마음이 풀어진 건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 동그라미는 헤어지자는 말을 철회하지 않았고, 미래 이야기를 할 때 더 이상 "나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이나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녀와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소처럼 지내는 지금의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서 요즘은 지금껏 소홀히 했던 작은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고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고 그녀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진작 이렇게 하지 않은 내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한심하지만,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잘 지내보자고 다짐한다.
나에게 하지말라고 하는 것을 네가 하고 있다. 그것을 지적하는 나에게 넌 "네가 완벽하지 않듯 나도 완벽하지 않다."라고 했다. 그럼 나는, 내가 했던 만큼은 네가 그러더라도 참아야 하는 걸까.
점심을 같이 먹다가 나무 재질의 젓가락을 설거지한 후 어떻게 말려야 할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우리집 식기 건조대는 수저를 말리는 공간이 바닥에 뚫린 물 빠지는 구멍이 너무 작아 그곳에 나무 식기를 넣어 말리면 아래쪽이 물로 인해 썩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식기구를 말릴 수 있는 바닥 구멍이 잘 뚫린 통을 하나 사고 싶었다. 하지만 너는 그건 불필요한 지출이고 그릇 말리는 곳에 그냥 눕혀서 말리면 된다고 했다.
평소 설거지를 대부분 맡아 하는 내 입장에선 수저를 눕혀 놓으면 아래 물받이에 빠져 고여있는 물에 수저가 젖기도 하고, 애초에 그것을 잘 눕혀 두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작은 통 하나를 사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너는 눕혀서 건조할 수 있다는, 즉 대체할 방법이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사지 말라고 했다. 우린 계속 논쟁을 하다가 나무 수저는 네가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하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수저통을 하나 사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 아무 쓸모 없는 파우치, 메모지, 노트 등을 사오는 너의 모습과 지금 일상의 효용을 주장하는 너의 모습이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어봤다. 네가 사오는 잡다한 것들도 쓸모 없는 것들이 아니냐, 라고. 그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내가 사고 싶은 통은 최대의 효용은 아닐지언정 어느정도는 편하지 않겠냐, 라고.
너는 내 질문에 "내가 사오는 물건과 굿즈들은 사치품이지만, 귀여운 걸 좋아하는 내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네가 사고 싶은 수저통은 건조대 옆에 수저를 놓아 말림으로써 충분히 대체가 가능한 것이다." 라고 했다.
나는 네 말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해 반박하려는데, 너는 나에게 "같은 말을 몇 번을 하게 하는 거냐"라고 했다. 아까 전 수저를 네가 식사 후 바로 설거지하는 것으로 논쟁을 끝내놓고 왜 자꾸 딴 소리를 하냐는 말이었다.
나는 계속 생각나는 너의 이중적인 모습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을 물어모고 궁금해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 했고, 거기에 너는 "멍청해서 이해를 못한다."라고 했다.
나는 너의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너는 일전에 나에게 '짜증이 난다고 짜증을 다 내지 말고, 왜 짜증이 나는지 설명을 해야 서로를 이해하고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 있다.' 라고 수차례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너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지금 왜 짜증을 내냐고. 내가 억지를 부린 것도 아니고, 물건을 그냥 막 사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고, 네가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못 사게 하는 이유가 이전에 했던 네 말과 달라서 의문이 드는 것을 물어보고 있을 뿐인데.
그것을 지적하는 나에게 넌 "네가 완벽하지 않듯 나도 완벽하지 않다."라고 했다. 내가 지적한 부분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넌 끝까지 나에게 짜증을 내며 눈치가 없다, 멍청하다, 꼴도 보기 싫다 라는 말을 퍼붓고는 방 문을 닫아버렸다.
그럼 나는, 내가 했던 만큼은 네가 그러더라도 참아야 하는 걸까. 내가 화나고 부당해도, 내가 아무리 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받았어도 내가 했던 만큼은 그냥 참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나는 멍청하니까 넌 멍청한 나를 이해시키려 노력하느라 힘드니까 내가 참아야 하는 걸까.
나는 또 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너는 내가 작아진 모습을 싫어한다. 일면 허세로 보이더라도 당당하고 대담한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네 앞에서 난 종종 작아진다. 네가 날 작아지게 한다.
(여친과 나, 원룸에서 동거 중) 여친 : 양파 써는 중 나 : 공부하는 중 나 : 눈물이 너무 난다. 여친 : 나는 하나도 안나던데.
나 : (인터넷에서 양파 썰 때 눈물 안 나는 방법 검색)
나 : 양파를 물에 잠깐 담그거나, 물 안에서 썰거나, 초를 켜거나 하면 눈물이 훨씬 덜 난다더라. 여친 : 그래? 다음번엔 물에 한번 담갔다가 해볼게. 나 : 응 여친 : 근데 물에서 써는 건 진짜 아니다. 나 : 그렇게 하면 매운 게 많이 날아간다더라고. 여친 : 그렇게까지 할 거면 양파를 왜 썰지? 그거 진짜 멍청한 짓 같다. 나 : ...? 여친 : 멍청하고 한심해. 인생을 왜 그렇게 살지? 나 : 왜 화를 내고 그래..? 여친 : 멍청하니까. 난 멍청한 사람 싫거든. 투룸으로 이사 가서 넌 방에 들어가 있고 내가 양파 써는 게 더 낫잖아. 그렇게 하자. 나 :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잖아. 여친 : 그럼 물안경 써. 어차피 몇시간 안에 사라지니까. 나 :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 여친 : 이런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왜 그렇게 멍청한 방법으로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그런 걸 나한테 얘기하는 너도 좀 그래 보이고. 나 : 내가 뭘? 여친 : 나한테 그걸 하라는 거잖아. 난 별로 하기 싫은데. 나 : 아까 네가 한번 해본다며. 여친 : 그건 니가 계속 이것 저것 얘기 꺼내니까 그런 거고. 나 : 아니 아깐 해본대놓고 그게 억지로 한 거라고 하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지? 여친 : 내가 기분 나쁜데 그걸 설명까지 해야 되잖아. 그건 짜증나는 일이야. 나 : 니가 화가 나면 왜 화가 났는지 말을 하고, 그게 내 잘못이면 인정하고 다음부턴 고친다고 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지. 너처럼 상대방도 똑같이 한번 열받아보라는 식으로 비아냥대는 건 인성이 썩은 건데. 여친 : 맞아 나 싸가지 없고 인성 별로야. 이제 알았어?
"항상 내가 대화를 주도하잖아." "나만 얘기하니까 현타 온다." "아무 감정 없이 나를 만지는 것 같아서 싫어." 네가 했던 이 말들은 전부 거짓이다.
나는 귀가 후 청소거리와 저녁 공부가 남아 있음에도 같이 있고 싶다는 네 말에 네 옆으로 가서 누워 얘기를 나눴다.
오늘 저녁 너와 내가 나눈 대화 주제는 절반은 내가 꺼낸 것이었으며 내가 꺼낸 주제가 아닐 때에도 나는 네 얘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네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물어본대도 난 네가 했던 말들을 상기할 수 있다.
네 직장에 가는 좀 더 나은 교통편을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넌 몇번이나 말했는데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며 짜증을 냈다. 그래 맞아 내가 환승이 되는 걸 안되는 걸로 착각했지. 근데 답답하다고 나한테 그렇게 막 짜증 내도 돼?
그리고 내가 널 아무 감정 없이 만진다고.. 네가 합숙 기간 중 혼자 해결했다는 말도 했었고, 언뜻 침대 옆에 스위트티도 있었기에 자기 전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했었다. 나도 계속 원했으니까. 이 사고 과정이 널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있었을까. 넌 도대체 어떤 생각을 했길래 내가 널 아무 감정 없이 만진다고 느꼈을까. 궁금하다.
나는 네가 하는 이런 말들이 본래 의도가 무엇이든 계속해서 나를 무언가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고 나 스스로를 너에게 주는 관심과 애정이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하게 해 나로 하여금 너의 눈치를 보게 하고 내 행동을 네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는 가스라이팅으로 느껴진다. 네 감정이 어떤지 너 스스로도 설명 못하고 있으면서 내가 뭘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건지..
관종이라서 사랑 받는 느낌을 원한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넌 네가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내 사랑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진심으로 내가 너에게 하는 표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넌 네가 받기를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나에게 표현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그래 내 표현이 부족했을 수 있다. 근데 오늘은 정말 아니다. 만약 너의 우울한 감정의 원인이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였으면 오늘처럼 나 때문에 우울하다는 식으로 말했으면 안됐다.
'내가 원하는 걸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아서 싫다.' 이것도 착각이다. 넌 바쁜 날 위해 새로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보러 다니는 일을 혼자 한다고 했었고, 나는 네가 매물을 보여주면 괜찮을지 같이 의논해주면 된다고 했었다.
그래서 난 오늘 네가 보여준 매물들을 꼼꼼히 살펴 봤고, 여러 조건들에 대해 상세하게 같이 얘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의견이 뭐가 없다는 걸까. 내가 집을 알아와서 너에게 보여주면서 이 집은 어떻냐고 물어봤어야 네가 마음에 들어 했을까. 그럼 애초에 네가 집을 알아본다고 하질 말든가.
미루고 미루던 사랑니 발치. 깊게 박혀 있어서 꽤 붓고 아플 거라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발치 후 일주일이 지난 어제 실밥도 풀었다. 발치한 치과가 좀 멀리 있어서 가까이에 있는 치과에서 발사를 했는데, 충치가 발견되어 치료를 받았다. 인레이. 25만원.. 양치 똑바로 하자.
이비인후과도 다녀왔다. 비염 초기 증상이지만 심한 건 아닌 걸로 보아 가벼운 약으로 치료해보고 안되면 다시 보자 하셨다. 약효는 아주 좋다. 먹고 나면 좀 졸리고 무기력해지는 것 말고는.. 그래도 버텨야지 않겠나.
드디어 부산에 갈 시간이 생겼다. 나는 기차 표를 예매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역에 도착하자 민수가 오프숄더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SRT 내리는 곳을 헷갈린 동그라미는 내가 내리자마자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동그라미는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내게 행복을 주는 존재이다.
부산역에서 나와 차이나타운을 한 바퀴 돌았다. 신발원이라는 만둣집이 있었는데, 동그라미가 좋아하는 곳이다. 만두가 맛있다고 하여 먹어 보고 싶었으나, 그날은 문을 일찍 닫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면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서면에 도착해 우리는 연어를 먹었다. 동그라미가 아버지와 자주 온다는 연어 맛집에서 세트 메뉴와 웰치스 포도맛을 함께 먹었다. 학술답사 이후에 처음으로 먹는 연어는 언제나 맛있었지만, 동그라미와 함께 있어 즐거웠다. 내가 부산에 가는 이유는 동그라미였다.
연어를 먹고 나와 우리는 삼보게임랜드에 가서 게임을 했다. 영화관 앞에 있는 게임장과 같은 게임장이었는데, 거기서 잠시 함께 놀았다. 기억에 남는 건 모르는 상대와 철권을 해 거의 이길뻔 하고 일어나는 동그라미의 표정과, 게임장 입구에서 오프숄더를 입고 펀치를 치던 동그라미의 모습이었다.
처음은 아니지만 동그라미가 기차 표를 예매한 것으로 나를 놀래킬 때 나는 너무나 감동을 받고 벅차다. 멀리 있어서 항상 보고 싶지만, 보고 싶다고 할 때마다 나를 위해 달려 와주는 동그라미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저녁 6시 10분 쯤 도착한다고 하는 동그라미를 위해 수업이 끝나고 쏘카를 빌려 대전역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막혔고, 기차 도착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나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헐레벌떡 대전역에 있는 성심당으로 갔으나 동그라미가 먹고 싶다던 바닐라라떼가 없었다. 얼른 뛰어 내려가 근처 빽다방으로 향했다. 바닐라라떼를 시켰고, 3분 정도만에 나왔다. 그걸 들고 다시 지하 상가로 가는 계단으로 뛰었다. 다행이 늦지 않게 도착했고, 동그라미를 맞이할 수 있었다. 동그라미를 데리고 오는 길에, 업데이트되지 않은 네비게이션 탓에 도로를 잘못 들었다. 사고는 나지 않았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차량을 반납하고 우리는 일미 닭갈비에 갔다. 먹고 싶다던 음식에 포함되어 있는 메뉴였다. 닭갈비를 배부르게 먹고 매번 가는 코스로 학교를 한 바퀴 돌아 내가 사는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날 밤은 길었다.
늦은 아침 일어난 우리는 외출 준비를 하고 나와 순대국밥을 먹기로 했다. 원조 할머니 순대국밥에 갔으나 점심시간대에 사람이 많아 참맛 국밥집으로 향했다. 원래 가려던 곳보다는 맛이 덜했지만, 동그라미는 맛있게 먹어주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내가 봉사활동을 가는 길을 동그라미는 함께 해주었다. 내 일상에 그녀가 함께 해준다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동그라미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나도 동그라미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있음으로써 동그라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이 어떤 감정인지는 나도 아직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일순간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 그런 감정을 동그라미에게도 주고 싶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동그라미는 한남대 북문 스타벅스에 가서 88년생 김지영을 봤다. 동그라미는 책 읽는 것이 취미이다. 동그라미의 독서량은 어마어마하다. 책을 읽는 속도도 빠르다. 그 책을 한 시간 반 만에 다 읽었다고 한다. 아무리 쉽게 읽히는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빠르게 읽기는 쉽지 않은데.
봉사를 마치고 나오자 동그라미는 근처에서 길고양이들에게 츄르를 주고 있었다. 동그라미를 겁내지 않던 고양이들은 옆에 내가 오자 겁을 냈다. 내 섬세하지 못한 행동들이 고양이를 도망가게 만들었다. 한 녀석이 도망가지 않고 다가와 츄르를 먹었다. 너무 귀여웠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타슈 자전거를 봤다. 동그라미는 그걸 타고 함께 엑스포다리 근처에 놀러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동그라미의 알바 시간대가 C조로 편성되었다. 금요일 밤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우여곡절 끝에 타슈를 빌린 우리는 기쁜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의 성능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가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러 아아 한 잔과 아이스크림을 샀다. 자전거를 인식하지 않는 맥드라이브에서 나와 동그라미가 매장에서 주문을 해왔다. 맛있었다. 그리고 그걸 먹는 동그라미는 귀여웠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그런 상쾌함을 느껴본 지가 정말 오래 되었고, 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니 행복했다. 동그라미와 함께면 뭐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달리는 내내 했다. 한밭수목원에 도착하니 과학을 주제로 한 축제 기간이라고 하여 푸드트럭이 즐비하게 있었다. 그 중 아직 폐점을 하지 않은 곳에 가서 떡볶이를 먹으려 했으나 음식이 모두 다 팔리고 없었다. 인심 좋은 사장님께서 어묵 국물을 주셨다. 따뜻하고 맛있었다. 동그라미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늘 뒤따른다. 동그라미는 좋은 기운을 내는 사람이다. 마침 걷기대회 비슷한 걸 하는 무리들이 지나갔는데, 그 단체에서 나눠주는 풍선을 동그라미는 너무나도 갖고 싶어 했다. 들뜬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돌아와 이터널 선샤인을 함께 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잠이 들 것 같아 10분만 자고 다시 일어나서 영화를 보겠노라고 하고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동그라미는 이미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를 위해 영화를 포기하고 그냥 잠을 자기로 한 것이다. 잠이 쏟아지는 와중에 너무나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동그라미가 시간을 길게 내어 대전에 왔다. 수, 목, 금, 토 3박 4일을 계획하고 올라왔다. 금요일 저녁에는 같이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퀴어축제와 음악 페스티벌을 즐기기로 했다. 갑자기 몰아친 태풍 때문에 동그라미 아버지의 출장이 취소되어 동그라미가 목요일 저녁에 가기 전까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아쉬워 한다면 동그라미의 마음도 편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크게 티낼 수가 없었다. 너무 보내기 싫어서 눈물이 났지만 울 순 없었다.
수요일에는 저녁 때를 맞춰 보문산 전망대를 다녀왔다. 한밭 종합경기장에 마침 야구가 끝날 시간이라 가는 길에 야구 응원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았다. 노을을 보고 밤을 함께 맞이하며 가을 바람을 맞았다. 보문산 전망대는 언제 가도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멋진 경치를 선사하고 있었다. 500원을 내고 망원경으로 야구 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도 봤다. 어딜 데려가든 좋아해주는 동그라미를 보며 이 여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에는 11시 수업이 있었는데, 수업을 듣는 동안 동그라미는 사범대 등나무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동그라미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옆에 앉으라 손짓했다. 옆에 앉아 동그라미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민수는 얼마 남지 않은 책을 모두 읽은 후 조금밖에 남지 않아 다 읽고 싶었다고 했다. 필통을 놓고 와서 민수의 만년필을 빌렸던 것을 돌려주고 나서, 동그라미는 부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애써 담담한 척 괜찮노라, 고 했다.
저녁 늦게 대전역에 동그라미를 보내고 나니 기분이 너무 우울했다. 헤어질 때마다 이런 기분을 느낄까? 익숙해지면 무뎌질 때가 올까? 아님 오래 가지 못할 사이인가? 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동그라미와는 정말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집에 오는 동안 동그라미와 내내 통화를 했다. 동그라미는 KTX를 타고 갔는데, 도착할 때까지 통화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