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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 짓을 해도 공부가 안되는 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제대로 공부를 시작한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다. 내 목표는 공무원 합격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공무원인데, 공무원과 전혀 상관 없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자극이 안되는 느낌이다. 이 감정은 고등학생때 정말 많이 느꼈다. 나는 국어교육과를 가고 싶은데, 책상에 올라와 있는 책은 영어 수학 책이니. 거기에서 오는 어떤 괴리감이랄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그 느낌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닭장과 다를 바 없는 면학실에서 고개를 처박고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언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감옥이랑 뭐가 다르지?

  새로 시작한 오전 알바 덕분에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데 성공한다. 여자친구가 있을 땐 늦게까지 통화를 하다 잠이 들곤 했다. 그래서 항상 아침잠이 많았는데, 연애를 안해서 좋은 점은 나에게도 아침이 생겼다는 것이다. 새벽을 맞이하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잠을 잘 통제하진 못해서, 아침 7-8시 사이에 일어나는 것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공시생들을 보면 대부분 6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난다. 그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 같아 깨어 있는 시간을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그것마저 잘 되지 않은 날이었다.

  일기란 것이 원래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적어내려가는 맛 아닌가. 딱히 내용도 형식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원고 쓰는 알바를 하고 있는데, 형식과 내용에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요소들을 신경쓰다 보면 내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들이 원하는 조건은 충족하는 글이 만들어지는데, 그건 글을 쓴게 아니라 생산한 것이다. 아무짝에 쓸모 없는 글자들의 모임. 주제도 없고 내용도 없이 오로지 클릭수와 문의전화만을 기다리는 공허한 울림들.

그래서 난 여기가 좋다. 여기만은 그 더러운 글들로 채우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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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부터 다시 학교에 다닌다. 국어교육과에 다니지만 국어 선생님에의 뜻을 포기한지 이미 오래다. 삼 개월에 삼백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다니려니 정말 짜증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실속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작년 수능이 끝나고 난 사서직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해서 2학기를 마치고 3학년이 될 때 문헌정보학과로 전과를 하거나 부전공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서직 공무원도 국어과 중등 임용과 같이 하늘의 별따기였다. 

  지금은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 국어국문학과로 전과를 하거나, 교직을 포기하고 남는 학점과 시간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 영어 과목을 수강하고 싶다.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 공무원이 되지 못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직 모른다. 예전 고삼때 수능이 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고민했던 것과 비슷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고민이 쓸 데 없는 고민이지만, 그 당시엔 심각한 것이었고 당시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거지.. 항상 일기를 써야지 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머릿속 정리가 안된다.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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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학할 때가 점점 다가오니 학점 관리와 졸업인증제, 과목 선택 등 학교 생활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꿀교양'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 단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꿀교양을 정의하자면, 교수님이 수업에 자주 빠져 수시로 휴강을 하고 조별과제나 다른 레포트 등이 적으며 공부를 하지 않아도 시험 점수가 잘 나와 학점을 취득하기 쉬운 수업 정도가 될 것이다. 한 마디로 학업과는 관련이 없고 그저 학점만 잘 챙겨 나올 수 있는 과목을 말한다.

  이 반대의 특성을 가진 수업을 꿀교양이라고 하는 학생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또한 그런 수업을 좋아하는 학생 또한 보지 못했다. 내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하기엔 비약이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소위 꿀교양이라 불리는 그런 수업을 그렇지 않은 수업보다 선호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애초에 대학교의 목적이 이미 학업이나 면학과는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학부 졸업장이 취업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학부 졸업생과 고졸 간의 사회적 시선이 차이가 없다면 과연 대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이 몇 퍼센트가 될지 궁금하다. 문제는 뭐든지 줄세우고 서열화하는 한국인 저변에 깔려 있는 관습적 문화가 대학을 하나의 스펙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에 있다. 대학 진학률 80퍼센트라는 엄청난 결과가 나온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모두가 다 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Specification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지식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고, 그런 사람을 일반적인 직장에선 더 우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다른 근본적인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군필자를 우대하면서 상대적으로 미필자를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는 것과 비슷하다.

  나도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고는 있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해서 절대 그사람들이 나보다 열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단지 내가 선택한 국어교육에 대한 지식을 내가 조금 더 알고 있다는 정도의 차별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서양사람들을 예로 들자면,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본인들 스스로가 쟁취하여 만든 민족들이다. 절대왕정을 민중의 힘으로 끌어내린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 개념이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표면적으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일본의 군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그들의 예의를 중요시하는 문화도 한몫을 하겠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이면의 그런 것에서 나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태도이다.

  사람은 한 가지 일만 잘 하면 그것으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다. 대학은 그 중 한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또는 그 일을 찾기 위해 도움을 주는 디딤돌 역할에 그쳐야 한다. 또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하여 사람을 무시하는 문화적 세태가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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