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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동그라미는 작년 9월 중순에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에 상륙했고, 나는 그 해 11월 대전의 자취방을 정리하고 동그라미와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를 시작한 것은 누군가가 이야기를 꺼내고, 수락한 게 아니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계속해서 우리는 '언젠가는 장거리 연애를 청산해야 한다'고 다짐했고, 그 종착지가 동거였을 뿐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따로 사는 것이 아닌 동거를 하는 것이 우리에겐 더 자연스러운 선택지였다.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만나는 시간의 대부분을 서로의 일상 생활과 정말 밀접한 상황에서 지냈다. 나는 부산에 연고가 없었고, 동그라미는 대전에 연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을 가질 때 서로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자연스레 동거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생활 습관부터 서로의 행동에 대해 실망하거나 다투는 경우가 꽤 있었다. 한번은 정말 크게 싸운 적이 있었는데, 이유는 다름 아니라 내가 설거지를 해놓은 것을 동그라미가 못마땅해한 것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버미큘라라는 회사에서 나온 밥솥으로 밥을 지어 먹었는데, 그 밥솥은 설거지를 하고 나서 물기를 잘 닦지 않으면 가장자리에 녹이 쉽게 슬어 주의해야 하는데, 내가 그 부분을 제대로 하지 않아 정말로 녹이 슬어버렸다.

  여기까지는 그냥 단순한 헤프닝이었는데, 그 밥솥을 관리하는 게 너무 까다롭다고 느낀 내가 그 밥솥을 설거지하기가 싫다고 말했고, 동그라미는 그런 나를 보며 자신이 못하는 부분에 대해 너무 쉽게 포기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작은 말싸움이 시작되었고, 동그라미가 나에게 "집안일을 하는 걸 보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짐작이 된다."라고 말했다. 화가 폭발한 나는 그 자리에서 "X나 싸X지 없다 X발."이라고 하고 집을 나와 버렸다.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냉전이 이어지다가, 다시 대화를 한 후 우리는 화해했다. 우리가 그 집에서 가장 크게 싸웠던 날이었다.

  그 집은 6개월 단기 원룸이었는데, 사람 두 명과 고양이 두 마리가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 3월 방이 넓게 빠진 1.5룸으로 이사를 왔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냐, 하면, 동그라미와 나 사이의 문제다. 언젠가부터 나는 동그라미의 말들이 모두 잔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느낀 내 감정이 동그라미를 대하는 말투와 태도에 비춰졌고, 동그라미는 내가 자신을 더 이상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천에는 연고가 없는 동그라미는 나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부분을 의지한다고 했는데, 그런 동그라미가 나의 태도를 보며 외로움도 느꼈다고 했다.

"우리 헤어져."

  이번 달 초, 동그라미가 나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으며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본 동그라미가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란 놈은 후회를 반복하면서도 변하지를 않는다. 당연하게도 나는 동그라미에게 매달렸고, 10월 한달 동안의 유예 기간을 갖기로 했다. 

  저번주에는 동그라미가 고향인 부산에 다녀왔다. 떨어져 있으면서 동그라미는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고, 친구의 숙모님 댁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대화도 많이 하고 왔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는 외로운 감정이 많이 위로된다고 했다. 통화를 하면서 나는 넌지시 그녀의 마음에 대해 물어봤는데, 그녀는 그런 걸 잘 눈치채는 편이라 "그냥 묻지 말고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내자."라고 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요즘은 그 말대로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고 있다. 평소처럼 앞으로의 계획과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헤어지자는 말을 한 적이 없던 것처럼 지낸다. 그래서 마음이 풀어진 건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 동그라미는 헤어지자는 말을 철회하지 않았고, 미래 이야기를 할 때 더 이상 "나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이나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녀와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소처럼 지내는 지금의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서 요즘은 지금껏 소홀히 했던 작은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고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고 그녀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진작 이렇게 하지 않은 내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한심하지만,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잘 지내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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