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면서 공무원 공부에 신경을 많이 못 썼다. 물론 연애를 하면서도 공부를 잘 병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유난히 잘 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여자친구를 탓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공부를 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아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한 학기 휴학을 더 하면서까지 공무원 준비를 했었던 시간들과, 들였던 노력들까지 전부 헛것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공시생 #공스타그램 이라는 해시태그로 나의 공부 과정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나의 외롭던 자취방 공시생 생활을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이 때 나는 네이버 블로그로 원고료를 받아 포스팅을 하는 일을 했었는데, 수입원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없는 만큼 말 수도 적어지고 교우 관계도 거의 끊기다시피 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어떤 일들에 대해 아쉬운 점도 없고, 누군가를 원망할 생각도 없다. 전부 나의 선택이었고, 나는 지금까지 장거리 연애를 잘 이어가고 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쉬운 감정은 있어도 억울하진 않다. 그동안 못했던 과목들에 대한 공부를 하려 책상에 앉아도, 애초에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니 내가 필기 해놓은 내용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괴로운 일이다.
올해가 공무원 수험생들에게 정말 가뭄에 단비같은 해라고 한다. 채용 인원은 크게 늘었는데 비해 공무원 응시생 전체 수는 줄어들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직렬과 상관 없이 경쟁률이 크게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 년도를 잘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는데, 아쉽게 되었다. 물론 아직 시험은 보지도 않았고,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ㅎ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공시생이라면 끝까지 힘을 내서 꼭 합격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당신이 해왔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 과정을 다시 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시간들이었고, 당신은 충분히 잘 해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빠이팅
드디어 부산에 갈 시간이 생겼다. 나는 기차 표를 예매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역에 도착하자 민수가 오프숄더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SRT 내리는 곳을 헷갈린 동그라미는 내가 내리자마자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동그라미는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내게 행복을 주는 존재이다.
부산역에서 나와 차이나타운을 한 바퀴 돌았다. 신발원이라는 만둣집이 있었는데, 동그라미가 좋아하는 곳이다. 만두가 맛있다고 하여 먹어 보고 싶었으나, 그날은 문을 일찍 닫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면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서면에 도착해 우리는 연어를 먹었다. 동그라미가 아버지와 자주 온다는 연어 맛집에서 세트 메뉴와 웰치스 포도맛을 함께 먹었다. 학술답사 이후에 처음으로 먹는 연어는 언제나 맛있었지만, 동그라미와 함께 있어 즐거웠다. 내가 부산에 가는 이유는 동그라미였다.
연어를 먹고 나와 우리는 삼보게임랜드에 가서 게임을 했다. 영화관 앞에 있는 게임장과 같은 게임장이었는데, 거기서 잠시 함께 놀았다. 기억에 남는 건 모르는 상대와 철권을 해 거의 이길뻔 하고 일어나는 동그라미의 표정과, 게임장 입구에서 오프숄더를 입고 펀치를 치던 동그라미의 모습이었다.
처음은 아니지만 동그라미가 기차 표를 예매한 것으로 나를 놀래킬 때 나는 너무나 감동을 받고 벅차다. 멀리 있어서 항상 보고 싶지만, 보고 싶다고 할 때마다 나를 위해 달려 와주는 동그라미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저녁 6시 10분 쯤 도착한다고 하는 동그라미를 위해 수업이 끝나고 쏘카를 빌려 대전역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막혔고, 기차 도착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나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헐레벌떡 대전역에 있는 성심당으로 갔으나 동그라미가 먹고 싶다던 바닐라라떼가 없었다. 얼른 뛰어 내려가 근처 빽다방으로 향했다. 바닐라라떼를 시켰고, 3분 정도만에 나왔다. 그걸 들고 다시 지하 상가로 가는 계단으로 뛰었다. 다행이 늦지 않게 도착했고, 동그라미를 맞이할 수 있었다. 동그라미를 데리고 오는 길에, 업데이트되지 않은 네비게이션 탓에 도로를 잘못 들었다. 사고는 나지 않았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차량을 반납하고 우리는 일미 닭갈비에 갔다. 먹고 싶다던 음식에 포함되어 있는 메뉴였다. 닭갈비를 배부르게 먹고 매번 가는 코스로 학교를 한 바퀴 돌아 내가 사는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날 밤은 길었다.
늦은 아침 일어난 우리는 외출 준비를 하고 나와 순대국밥을 먹기로 했다. 원조 할머니 순대국밥에 갔으나 점심시간대에 사람이 많아 참맛 국밥집으로 향했다. 원래 가려던 곳보다는 맛이 덜했지만, 동그라미는 맛있게 먹어주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내가 봉사활동을 가는 길을 동그라미는 함께 해주었다. 내 일상에 그녀가 함께 해준다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동그라미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나도 동그라미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있음으로써 동그라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이 어떤 감정인지는 나도 아직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일순간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 그런 감정을 동그라미에게도 주고 싶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동그라미는 한남대 북문 스타벅스에 가서 88년생 김지영을 봤다. 동그라미는 책 읽는 것이 취미이다. 동그라미의 독서량은 어마어마하다. 책을 읽는 속도도 빠르다. 그 책을 한 시간 반 만에 다 읽었다고 한다. 아무리 쉽게 읽히는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빠르게 읽기는 쉽지 않은데.
봉사를 마치고 나오자 동그라미는 근처에서 길고양이들에게 츄르를 주고 있었다. 동그라미를 겁내지 않던 고양이들은 옆에 내가 오자 겁을 냈다. 내 섬세하지 못한 행동들이 고양이를 도망가게 만들었다. 한 녀석이 도망가지 않고 다가와 츄르를 먹었다. 너무 귀여웠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타슈 자전거를 봤다. 동그라미는 그걸 타고 함께 엑스포다리 근처에 놀러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동그라미의 알바 시간대가 C조로 편성되었다. 금요일 밤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우여곡절 끝에 타슈를 빌린 우리는 기쁜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의 성능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가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러 아아 한 잔과 아이스크림을 샀다. 자전거를 인식하지 않는 맥드라이브에서 나와 동그라미가 매장에서 주문을 해왔다. 맛있었다. 그리고 그걸 먹는 동그라미는 귀여웠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그런 상쾌함을 느껴본 지가 정말 오래 되었고, 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니 행복했다. 동그라미와 함께면 뭐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달리는 내내 했다. 한밭수목원에 도착하니 과학을 주제로 한 축제 기간이라고 하여 푸드트럭이 즐비하게 있었다. 그 중 아직 폐점을 하지 않은 곳에 가서 떡볶이를 먹으려 했으나 음식이 모두 다 팔리고 없었다. 인심 좋은 사장님께서 어묵 국물을 주셨다. 따뜻하고 맛있었다. 동그라미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늘 뒤따른다. 동그라미는 좋은 기운을 내는 사람이다. 마침 걷기대회 비슷한 걸 하는 무리들이 지나갔는데, 그 단체에서 나눠주는 풍선을 동그라미는 너무나도 갖고 싶어 했다. 들뜬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돌아와 이터널 선샤인을 함께 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잠이 들 것 같아 10분만 자고 다시 일어나서 영화를 보겠노라고 하고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동그라미는 이미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를 위해 영화를 포기하고 그냥 잠을 자기로 한 것이다. 잠이 쏟아지는 와중에 너무나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10월 4일 목요일에 민수를 보내고 하루가 지난 금요일, 엄청난 외로움과 공허함에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수의 다정함에 눈물이 나왔다. 민수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해 아쉽고 외롭고 보고 싶다고 했다. 민수는 미안하다고 했고, 어떻게 위로해줄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민수가 내 말을 들어주고 있다는 걸로도 내겐 큰 위로가 되고 있었다.
민수는 문득, 내게 부산에 오는 기차를 예매했냐고 물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그렇다, 고 했다. 그러자 민수가 다급한 말투로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더니 다음날 본인이 대전으로 가는 SRT를 예매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우울해하고 외롭다고 해 가만히 둘 수 없어 대전에 오는 것이라 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전 6시 30분, 대전역에 민수가 내렸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모습과 밝은 표정의 민수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내게 안겼다. 행복해 눈물이 나왔지만 민수 앞에서 숨기고 싶었다. 동네 김밥집에서 김밥 세 줄을 사고, 빵집에서 빵을 사고, 마트에서 인스턴트 우동을 구매해 집으로 와 아침을 먹었다. 사랑스러운 민수는 여전히 복스럽게 음식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잠깐 함께 잠이 들었다가, 빗소리를 들으며 영화 두더지를 함께 봤다. 혼자 볼 땐 멋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민수와 함께 보니 처음 봤을 때보단 많이 별로였다. 시간이 좀 아깝다고 생각했다. 민수와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계속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육회비빔밥을 사주고 싶어 육 앤 회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살짝 매운 것을 민수는 딱 좋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나와선 학교 정문쪽으로 걸어가 사범대를 들러, 기숙사 가는 오르막길을 올라 문대 쪽문으로 나왔다. 오다 문득 코인 노래방에 가지 않겠냐고 해서 노래방에 갔다.
자취방에 오고 나서 민수는 조금 피곤했던 모양이다. 10분만 같이 자기로 하고 잠이 들었는데, 기차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깊게 잠이 들었다. 중간에 몇 번 깨긴 했는데,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피곤해 보이기도 했지만 곤히 잠들어 있는 민수를 도저히 깨울 수가 없었다.
민수를 대전역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 더이상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수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